믿을 수 없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3-08-17 07:25 조회2,372회 댓글21건관련링크
본문
여기는 병원입니다.
지금 이 병원의 한 병실에는
저와 가장 많이 닮은 노인 한분이
가슴을 열고 늑골에 철심을 박은 모습으로
누워 계십니다.
올해 연세 일흔 다섯
이젠 농사일도, 세상의 험한 일도 거둘 때가 되었건만
아직도 거두지 못한 일들이 남아있어
혼자서는 시동도 거시지 못하는 경운기를 끌고
고추밭에 농약을 하시고 돌아오시다가
대문에 들어서시지도 못하고
문설주와 경운기 사이에 끼어
갈비뼈 여섯 개를 부러뜨리고
폐에 심한 상처를 입으신 채
응급실에 실려 오셨습니다.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까
농사일은 그만 두시라는 자식들의 청도 거절하고
그래도 안되면 경운기는 접어두고
모터를 설치해드리겠다는 간곡한 요청도 묵살하고
그까짓 경운기 하나도 못 끌고 다닐 정도면
죽은 목숨이라던 당신의 고집이 만든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습니다.
이제 농사일도 경운기도 그만 둘 때도 되셨건만
자식들에게만큼은 농약으로 지은 쌀이며 고추대신에
당신 손으로 손수 가꾼 쌀을 주고 싶어했던 父情.
유난히 잦은 비로 다른 곳은 모두 고추가 말라 죽었어도
당신의 정성으로 유난히 튼실하게 고추를 키워냈는데
이 뜻밖의 사고에 우리는 그저 입을 다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유난히 건강이 좋지 않아
그 동안 잦았던 외출도 거두신 채
겨우 병원에 다녀오시면 그저 방안에만 누워 계시더니
그날은 그분 말대로 일진이 무척 사나왔는가 봅니다.
믿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농사일을 그만두게 했어야 했습니다.
아니 경운기라도 고물상에 처분해버리고
스위치만 올리면 되는 모터로 바꿔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잠깐 잠깐 곁에 없는 일들은 잊고 지내다가
뒤늦게 당신의 가슴을 열어 속살을 헤집은 뒤
밤새 고통에 뒤척이시는 당신 곁에서
때늦은 후회로 밤을 새웁니다.
갈비뼈 사이로 구멍을 뚫고
그 안으로 호스를 집어넣어
폐에 고인 피와 잔재물을 빼내고
다시 겨드랑이 아래를 손바닥 크기만하게 살을 가른 뒤
조각조각 부서진 뼈들은 추려내고
부러진 뼈들은 철심으로 고정하고
젊은 사람이라면 열흘 정도면 뼈가 붙는다는데
한달 이상을
그렇게 병상에 누워 지내셔야 된답니다.
사고나기 며칠 전
저를 찾아오셨을 때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한평생 다투기만 했던 어머니와
늙으막 정이 새로워
녹용 한편이 드시고 싶으시답니다.
하여 동네 동생에게 부탁하여
가장 건강한 사슴의 뿔을 잘라
초벌 다린 물을 겨우 한번 입을 적셨는데
두고두고 가슴아픈 이야기를 남길 뻔 했습니다.
어머니 아프셨을 때 입맛 돋우라고
부안장까지 가셔서
꽃게를 사왔다고 자랑이시던 어머니는
응급실에 실려온 뒤에도 온통 눈물 범벅이십니다.
혹여 이대로 돌아가시지는 않을까 눈을 붉히면서
전국에서 모인 자식들.
엑스레이상으로
갈비뼈 여섯 개가 부러지고
그중 도막난 뼈 하나가 부러져 폐를 뚫었다는 초진과는 달리
폐는 그저 외상만 입었다는 수술 결과에
우리가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당신은 알고 계실까요?
이제 가슴을 연지 열하루가 지났습니다.
이제는 홀로 일어나 걷기도 하시고
화장실도 혼자 다닐 정도로 회복되셨지만
행여 하룻밤 새에 무슨일이 생길까 하여
당신의 아들과 사위들이
교대로 당신 곁에서 같이 밤을 보냅니다.
아찔했던 사고 순간의 기억과
흉터로 남을 가슴의 수술자욱까지 모두 아물어
남은 여생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그저 빌고 비는 마음 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우리 회원님들
혹여 농촌에서 부모님이 농삿일을 하고 계시거들랑
저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마시고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몸은 비록 늙으셨어도
마음으로 생각하시는 나이는
아들인 제 나이와 같다는 것을
이번 사고를 통해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 사고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오신 분에게
사고보다 더 아프게
당신의 연세를 깨닫게 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30년 쯤 뒤에
병상에 초라하게 누워있는
님들의 모습을 보게 될테니까요.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전북대 병원에서 예솔지기 드림
댓글목록
김승우님의 댓글
김승우 작성일
아버님의 쾌차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김인숙씨는 당선소감에서 "괜찮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썼더군요.
다 "괜찮을"겁니다. 힘내십시오.
최규근님의 댓글
최규근 작성일힘내세요. 기도할께요. 경과가 좋다니 천만다행입니다. 그래도 걱정할 부무가 계시니 부럽습니다. 효도 많이 하세요. 막내인 저는 부정을 어렴푸시 느껴보지만 희미할 뿐.... 이제는 환갑 한참 지난 형님들이 걱정입니다. 아직도 과수원 일을 많이 하고 계시니깐 여름이면 맣이 돕고 싶지만 언제나 세월에 속고 있지요.......... ㅠ.ㅠ
정경자님의 댓글
정경자 작성일아버님의 병세가 호전되어 다행입니다.끝없는 우리네 부모님들의 사랑을 보는듯 합니다.뒤에서 염려와 격려와 기도하는 저희들이 있다는걸 기억해주세요.인생사 세옹지마라하더이다.화이팅...
권진우님의 댓글
권진우 작성일이선생님, 부친의 빠른 치료와 건강 회복을 가슴 깊이 소망합니다.
조성수님의 댓글
조성수 작성일산토끼처럼 매일 예솔에 들려 글만읽고 가는사이 그런 일이있었군요..부모님이야 자식사랑에 그리 하신다지만...그런일있으면 죄책감에 몸둘바를 모르는 자식생각도 부모님이 하셨음 싶네요..쾌차를 빌구요..예솔님두 건강유의 하세요~! 큰일 벌여놓은건 잘되시는지..
한봉수님의 댓글
한봉수 작성일이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아버님의 사고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군요. 지난번 은태님의 글에선가 아버님께서 병원에 계시다기에 그저 노환이시려니 생각했었는데 큰 사고를 당하셨다니......빠른 쾌차를 빌겠습니다.
윤희진님의 댓글
윤희진 작성일큰사고 였군요.아버님의 빠른회복을 기원합니다.선생님도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그만하시길불행중 다행으로 생각하시구요.힘내세요...
이원주님의 댓글
이원주 작성일남의일 같지가 안네요. 저희 부모님도 칠순이 되었는데 그렇게나 말려도 손을놓지 못하고 게시거든요. 이 못난 자식이 신경을 더 써야겠네요.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권오창님의 댓글
권오창 작성일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버님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저희 어머님도 3남매를 다 키워놓으시고도, 지금도 조그만 가내 공장을 그렇게 고집하시며 다니시네요... 그럼에도 자식들은 건성으로 몇번 말리곤.. 또 이렇게... 부모 사랑과 자식 마음이 그렇게 다른가 봅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쾌차를 빕니다.
유호승님의 댓글
유호승 작성일
힘내세요. 아버님의 쾌유를 기도합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납니다. 위암 선고 받으시고도 곧 괜찮을거라 오히려 자식들 위로하셨던 생전의 모습이... 경과가 좋다니 다행입니다.
2003/08/18
유상선님의 댓글
유상선 작성일
늦은 휴가 마치고 오늘 귀가 하였답니다
효심이 통한 빠른 쾌유를 간절히 빕니다
처음으로 찾았던 예솔원!
자상한 설명에 감사드리며 무궁한 발전이 함께 하시길
조규용님의 댓글
조규용 작성일부모님이 천리 밖에 계시는 저로서는 이번 일이 남의 일만 같진 않군요. 큰 고비는 넘겼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힘내세요, 선생님!
조희만님의 댓글
조희만 작성일
기원 함니다 빠른 쾌차를.....
어쩌면 한번은 뵈온듯한데 큰사고였다니
혹 병원에 오시는 길에 전화래두 해주세요
마다지 않고 한번 찾아 뵐께요
이한빈님의 댓글
이한빈 작성일
이선생님 ....상심이 크시겠지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이번일을 고비로 아버님께서도 오래오래 만수무강
하시리라 생각하시고...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이용범님의 댓글
이용범 작성일이선생님 힘내십시요. 아버님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전정호님의 댓글
전정호 작성일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노환이려니 했었는데 아찔한 사고였었네요. 회원님들께서 이렇듯 걱정해주시는데 곧 훌훌털고 보란듯 하실겁니다. 한걱정일랑 마시고 한걸음 늦춰 사는 지혜도 모아봅시다.
이정노님의 댓글
이정노 작성일
선생님 !
아버님 건강이 하루 빨리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부모님께 아무리 효도한다해도 자식사랑하는 마음 같지는 않을겁니다.
모든이들이 가족 건강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방민식님의 댓글
방민식 작성일힘내세요.아버님의 빠른 꽤차를 다시한번 기원합니다
강돈원님의 댓글
강돈원 작성일시간이 지난다 해도 아마도 지금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잘 지나가지도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 것인가가 참으로 힘들 것이라고 생갑됩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영제님의 댓글
김영제 작성일노 부모를 시골에 둔 저에게는 마치 저의 일처럼 느껴지는군요. 빠른 쾌유를 바라겠습니다
박용출님의 댓글
박용출 작성일안탑깝군요...부모님이 하늘에계신 저에게는 가슴뭉쿨해 짐니다...빠른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