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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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5-05-15 23:07 조회2,356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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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전날이 마침 어머니 생신이어서
모든 형제들이 예솔에 모여 야단 법석을 한 뒤
이튿날 어버이날에는
우리 아이들 선물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뭐가 부족해서가 아니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주는 선물이 무엇일까?
더군다나 며칠 전부터 우리 초등학교 일학년 딸내미는
선물을 산다고, 비밀이라고 암시를 주어서
사람을 은근히 기다리게 했으니까요.
하여 어버이날.
딸래미는 먼저 눈을 뜨더니
포장하여 신발장 앞에 내놓았던 선물을 건네줍니다.
포장을 풀려고 하니 안방으로 달아납니다.
포장 안에는 저희들이 좋아하는 "닭다리"라는 과자가 한봉지
비뚤빼뚤 쓴 편지와 용돈을 털어 산 카네이션이 보입니다.
"아들은?"
그러나 아들은 빈손입니다.
아무 말 없이 머리만 긁습니다.
제가 필요할 때는 몇천원씩 쓰는 녀석이
막상 저를 낳아준 부모에게 선물을 하는 일년중 단 하루를
이렇게 넘기다니요.
이 나쁜 녀석 어디 너 두고 보자.
이렇게 단단히 결심합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울산에 사시는 회원님 한 분이
배즙 한박스를 보내오셨습니다.
예솔지기의 누님 역시 배를 키우기 때문에
구하려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처가집까지 가서 보낸 정성에 마냥 목이 멥니다.
그러나 수학여행이다 뭐다 해서
고맙다는 전화를 드릴 기회를 놓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갑절로 전해드립니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은 오늘이지만
오늘이 일요일이라 대부분 토요일로 앞당겼지요.
우리 아이들은 수학 여행을 다녀온 뒤라
학교가 쉬기 때문에
여행 후유증을 다스리며 분재원을 둘러보는데
낯익은 녀석들 넷이 찾아왔습니다.
제 발밟은 사람을 쳐다보는 것도 바쁜 고 3녀석들입니다.
이 녀석들 편지 한 통씩을 꺼내놓더니
점심을 내놓으라고 야단입니다.
하여 새싹 비빔밥을 점심을 주었더니
할 일을 달랩니다.
생각 끝에 나무들 사진을 찍고
분재원을 일부 정리하고
이리저리 기억들을 뒤적이며 한담을 나누다보니
제주에서 소포 하나가 도착합니다.
이름을 보니 낯익은 분입니다.
"생선"이라고 쓰인 박스를 얼른 냉장고에 넣었다가
오늘 아침 풀어보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생선 좋아하는 예솔지기 식성은 제주도까지 소문이 났는지
거기에는 고등어 자반에 제주 옥돔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냥 눈물 겨울 수밖에요.
지난 번 당단풍에 문제가 있다 하여
당연히 예솔의 약속대로 바꾸어드린 것 뿐인데
제주의 고 회원님은 다시 생선을 보내온 것입니다.
아침에 당장 식탁에 오른 생선을 먹으며
각박한, 아니 요즘 솔직히 말해
지난 해 예솔의 집 건축에
올봄 사스기 수입 후유증으로
상당히 지쳐있는 저에게 힘이 되어줍니다.
그렇게 초파일 하루가 열렸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회원이 게시판에 당단풍을 내놓았다구요.
게시판 글을 보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인터넷은 이미지가 생명인데
그 이미지와 예솔의 명예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미처 답변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여기 사정도 모른 채 감정대로 쓴 글처럼 보이는,
그리고 그 답변을 하기 위해 당단풍 사진을 찍으며 준비하던 차에
그 글을 보니 맥이 갑자기 팍 풀립니다.
그분은 지우라고 하는데
지우지 않으려 합니다.
고마운 선물을 기억하듯
그 선물 역시 초파일 선물이 분명하니까요.
세상 모든 것들을
제 맘에 드는대로 선택해서 기억하고
제 맘에 들지 않는다하여 버릴 수 없듯이
그렇게 예솔의 기억에 담아두려 합니다.
그때 그때 올라오던 답변이 며칠 채 소식이 없자
무슨 일 있느냐며 안부를 물어오던
몇분의 회원님들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초파일,
이래저래 생각 깊은 밤이 깊어갑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십시오.
댓글목록
홍을표님의 댓글
홍을표 작성일
사는게 게 다 그런게 아닐까요?
모든게 양면이 있듯이 사는게 다 그런것 같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맞는 짝을 찾아 헤메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김양수님의 댓글
김양수 작성일천하에(의) 이재룡 선생님 파이팅!!!
최규근님의 댓글
최규근 작성일담담한 수채화 같이 사는 모습이 아릅답습니다. 나무에도 굴곡이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하듯이 우리네 인생도 굴곡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더 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선생님 힘냅시다
이승택님의 댓글
이승택 작성일
휴~~~ 가슴이 답답하군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을.......
예솔지기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보내주셨던 당단풍은 너무 너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좋은 날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