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보시절 3 - 예솔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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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5-06-04 09:41 조회2,797회 댓글7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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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보 시절 3
좀 천천히 가게요.
아무리 리플 다섯 개 달면 다음 글 올려드린다고 했다고
하룻만에 이렇게 많은 댓글이 달리면
정신 없잖아요.
그리고 한꺼번에 많은 글 올리면
읽다가 지쳐요.
이렇게 야금야금 퍼올려야
감칠맛이 더하거든요.
이 글은 전체 7차에 걸쳐 올려드릴 예정이니
조금 더 느긋하게 씹어가면서 읽으시고
읽으신 다음 분재 쇼핑에 들러
분재들도 구입하세요.
요즘 예솔지기 많이 배고파요.
순창은 산악지형이라 논둑 밭둑에 돌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척박한 땅이 많다는 뜻이지요.
느릅나무가 위장병에 좋다고 하니까
지금은 너도나도 할것없이 모두 캐어가고
그나마 남은 그루터기도 제초제를 뿌려서
자연 상태의 느릅나무를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산자락을 끼고있는 계곡이나 밭둑에는
재미있게 생긴 느릅나무가 많이 있었어요.
더구나 밭에 그늘지거나 곡식에 해가 된다고
해마다 가지를 잘라내어 자연 그대로 분재인 나무가
수도 없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좋은 나무를 애써 캐다가 분에 심으면
뿌리 부분이 썩어들어가면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죽는거예요.
여기 저기 분재원에 물어보았더니
"글쎄요, 느릅나무는 잘 사는 나무인데요."
이런걸 미치고 환장한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은 잘 사는 나무인데
왜 나는 캐다가만 놓으면 죽느냐구요?
그리고 분재원들이 나무 팔 연구만 하지
나같은 초보자가 물어보면 절대 안가르쳐주더라구요.
그리고 가르쳐준다는 것이
큰 인심쓰듯 상식이나 하나 둘 가르쳐 주구요.
어쨋든 도전할 대상이 생겼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보아야지요.
일단 캐온 나무를 이번에는 밭에다 심었어요.
그랬더니 뜻밖에도 쉽게 활착을 하대요.
그리고 해마다 전지를 하고
수형을 수평으로 늘어뜨리며 가지를 받았지요.
이렇게 2-3년이 지난 다음 봄에 캐어 분에 올려보았어요.
몇주가 살데요.
그런데 사는 나무는 한결같이 싹이 막 터나오는 것을 옮긴 경우였어요.
아하 이것도 역시 물과 시간에 관련되는구나.
그랬어요.
느릅나무는 알다시피 수피가 두꺼운 나무예요.
그러니 자체에서도 수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 수분이 부족해진다 싶으면
뿌리를 내려 삶을 영위하지요.
분에 심을 때 다른 나무처럼 물을 자꾸 주면
나무가 필요로 하는 물보다
필경 더 주게 되어있고
분 바닥에는 물이 항상 고여있어요.
나무에게 물은 약간 모자란듯하게 주어야 건강하게 자라요.
그래서 시들기 직전이라는 물주기 용어가 생긴 거구요.
그러나 수피가 얇은 철쭉이나 백일홍등은
자체에 수분탱크가 없기 때문에
열심히 물을 주어야 수분이 모자라지 않지만
느릅나무처럼 수피가 두꺼운 나무는
물관리가 달라져야 하는 거지요.
마치 선인장에 물을 많이 주면 죽는 것처럼
느릅나무도 그랬던 거지요./font>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나무가 이쁘기는 한데
만약 나무를 캐내면 논둑 밭둑이 무너지게 생긴 곳이 한둘이 아니더라구요.
주인 몰래 캐낸다 하지만 양심이 있죠.
더구나 나는 명색이 선생인데......
그리고 내 하고싶은 일 하겠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잖아요.
연구 끝에 장마 시작전에 돌아다니면서 취목을 시작했어요.
책에서 배운데로 나무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수태를 감고 검은 비닐을 감아놓으니
장마 지난 후에 거의 뿌리가 내렸어요.
아, 여기서 한가지,
수태를 싸맬 때 실이나 비닐 끈등을 이용하여 수태를 묶는데
조금 세게 묶으세요,
헐렁하게 묶은 것보다 뿌리가 훨씬 많이,
그리고 빨리 내립니다.
이런 것을 장마가 끝날 무렵 잘라다가 분에 옮겨 심었죠.
이렇게 느릅나무도 정복했어요.
이제 이 시행착오 끝에 죽어간 수많은 느릅나무에게
삼가 조의를 표해야 하겠죠?
자 그럼 이글을 읽으시는 분 일동,
묵념 시작.
이렇게 분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나는 거예요.
나도 이제 분재 소재 한번 키워보자!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 같이 근무하는 ET선생님이
전남 무안의 김용진이라고 하는 분이 친구의 작은 아버지가 된다고 하면서
한번 만나러 가재요.
그래 그 분을 만났는데 진정한 선각자였어요.
당시 무안 앞바다에 지도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 섬에서 무한정 자연산 해송 소재가 쏟아져 나왔대요.
다른 사람들이 그 소재를 캐다가 상품으로 만들어 팔 때
이분은 그 씨를 받아다가 땅에 뿌렸던거지요.
다른 사람들이 미친 짓 한다며 비웃었지만
지금은 분재원하시는 분은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분재계의 거목이 되어 있지요.
서울의 곰솔 분재원은 둘째 아드님이 하시고
광주 곰솔분재원은 그분이 직접 운영하시고
무안의 곰솔 분재원은 큰아드님과 같이 운영하시면서
예솔의오늘이 있기까지
이분이도와주신 것은 글로 다 표현이 안된답니다.
이 분을 만나 소재 생산에 대하여 문의했더니
얼마든지 하래요.
지금 당장 소재가 부족해서 수출할 물량도 달린다고 하시면서요.
그러면서 저보고 한 5000주 가량이면 무난하고,
아니 선생이니까 2-3천주 가지고 시작해보래요.
그런데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일단 이 사업의 전망을 꼼꼼히 챙기면서 사주보는 분
(예솔지기 책사분인데 언제 한번 소개해드릴께요)하고 상의 했더니
대찬성이더라구요.
일단 씨를 구입해서 책에 나온대로 가는 마사에 뿌렸어요.
신기하데요.
씨는 거의 90%이상이 발아한 묘목을 다시 뿌리를 잘라 심었는데
80%이상이 살아나는 거예요.
1995년 춘분날 씨앗을 뿌렸는데
그날 새벽 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하늘로 치솟은 듯한 산이 보이고(실제로는 없음)
그 산에 소풍을 갔는데
엄청 길어보이는 폭포에서 맑은 물이 쏟아져 내려
시내 일대가 온통 물바다가 되는 꿈이었지요.
이게 바로 지금의 예솔을 태동시킨 태몽이었답니다.
일단 땅을 구입해야 하니까 순창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분재원겸 분재를 키울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소재를 어떻게 생산하는지,
그리고 어떤 수형이 좋은 작품인지
본격적인 분재 수업을 시작했어요.
광주, 마산, 부산, 군산, 전주, 유성, 무안, 진주등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나 제가 참고할만한 나무가 있으면
카메라를 들이대었어요.
그리고 집에서 한가하면 사진을 보고 수형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나중에 발견한 사실이지만
분재를 그리는 것이 수형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요.
가지의 배열, 곡의 위치등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가르쳐주거든요.
이렇게 맘에 드는 나무로 사진을 찍어
아기 앨범 한권을 거의 채울 무렵
순창 일대를 일년간 배회하다가 지금의 예솔 자리를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지난 회처럼 리플 다섯 개 달리면 계속됩니다.)
댓글목록
최석진님의 댓글
최석진 작성일
금방 올렸나 봅니다. 따끈따끈 하네요?!
읽을수록 자꾸 빠져드는데 마음으로 쓰시는 글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소사 두놈 잘 받았심다.
주상규님의 댓글
주상규 작성일
지기님의 글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빠져들게 만듭니다. 아. 이 녹색의 끌림!
여러모로 제게 시사하는 바가 많네요.
나무와 물의 곁으로 돌아가고자 꿈꾸는 초보 드림.
이재영님의 댓글
이재영 작성일바짝 마른 땅에 내린 비같은, 갈증을 확 풀어주는 글입니다. 아끼는 나무가 자꾸 노래져서 걱정을 했는데 결국 걱정을 해서 물을 자꾸 주게 된것이네요. 감사합니다.
김병수님의 댓글
김병수 작성일
구 게시판에서 3번 정도는 읽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보려고 했지만 찾을수가 없더군요
새로운 버전으로 보니 더 새롭고 유익합니다
김준용님의 댓글
김준용 작성일저도 어느덧 이곳 예솔에 87번째 방문이군요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듯이 자꾸 빠져들고... 예솔에 갈 생각만... 6월 중순에는 꼭가야할텐데...
김영제님의 댓글
김영제 작성일좋은글 감명 깊게 보고 있답니다. 오늘이 마침 현충일인데 두번 묵념을 하게 되었네요...
서기주님의 댓글
서기주 작성일
소설과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리플을 안 단다고 혼나서가 아니고, 감동으로 많은 생각 중이였습니다.
空行空返
"행한것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라는 격언이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