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솔의 신화- 신화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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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6-06-09 09:44 조회1,96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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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화의 첫걸음.
처음 시작하는 일은 늘 그렇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예솔 터는 제가 구입할 때만해도
아무데서나 마구 잘 자라는 콩마저도 외면하는
황량하고 거친 자갈 땅이었습니다.
거기에 성토를 하고
예솔지기가 직접 연장을 들고
이미 내구연한이 끝난 고물이 된 하우스를 300평 사들여
하우스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전문가를 불러 짓는 하우스가 아니라
예솔지기가 쇠톱으로 자르고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박고
그렇게 하나하나 꼽아가는 하우스였습니다.
그렇게 길게 세동을 지은 다음
나머지를 가지고 판매시설을 지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하우스를 짓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때로는 달밝은 밤이면 혼자 하우스 위에 올라가
핀을 꼽고 나사를 죄고
그렇게 꼽아나간 하우스는
삐뚤빼뚤 제멋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어가는 하우스도
그땐 얼마나 대견했는지....
그렇게 하우스를 짓고 나서
광주 어느 분재원이 정리를 한다기에
셋이서 그 분재원을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소재를 사들였고
기존에 제가 키우던 나무들도 같이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100여평 남짓한 공간에서 마사를 씻어 분토로 사용하고
서툴게, 아마츄어 냄새 포올폴 날리며
그렇게 예솔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광주, 전주 사람들의 드라이브 코스이고
경상도 사람들의 내장산 가는 길목에 위치했다는
그렇다고 뻔질나게 차량이 왕래하는 곳도 아니고
조금은 외진 곳에서의 출발이
예솔의 시작이었습니다.
첫해에는 며칠건너 한사람씩 손님이 들어오고
그들 중에 분재를 구입해가는 사람도 더러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 날은 외식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집사람은 과외를 하고 있어
그리 돈이 궁하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에
마치 용돈 벌 듯이 분재원을 운영해나갔습니다.
완전이 간판을 건 취미생활이었던 셈입니다.
학교에서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소재 하나하나에 철사를 거는 것이 좋았고
나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순을 자르고 가지를 자르고 나면
거친 애들 이발해준 듯 기분까지도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외우다시피한 책들의 내용과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년은 온통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시면서
하나둘 던져놓거나 알려주고 가는 분재 지식은
꼬박꼬박 기록해나가며
분재 지식의 자양분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분은 소재를 사가시고
어떤 분은 분재 지식을 일러주고 가시고
또 어떤 분은 구경만 하다가 나가시고.....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나니
첫해 일년동안 400만원 정도를 팔았더군요.
하루 만원어치씩 판 꼴입니다.
그것이 예솔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한햇동안 그동안 사들인 나무만 축냈지만
분재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하나하나 분재 지식을 축적해가며
또 하나 사람들과 다리를 놓는다는 것이
산골의 생활을 기분좋게 장식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다음에 계속됩니다.
댓글목록
이경술님의 댓글
이경술 작성일황량하고 거친 땅을 이 처럼 만드시는데 걸린 십년이라는 세월이상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그리고 "가능할까?"를 "불가능은 없다"로 확신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