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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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6-12-04 09:39 조회2,305회 댓글1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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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는 다섯가지가 좋은 나무랍니다.
첫째는 병충해가 없으며
두 번째는 새가 둥지를 틀지 않아 새똥 맞을 염려가 없고
셋째는 그늘이 깊어 쉬기 좋은 나무랍니다.
넷째는 단풍이 아름다우며
마지막으로는 그 수명이 길다고 했습니다.
그런 감나무에게 제가 한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은
감나무에게 까치밥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을 모두 수확하고 나서
가지끝에 남겨놓는 그 감 몇 개,
대학생 시절, 내장사를 찾아간 겨울
감나무를 흔들어 눈위에 떨어진 까치밥을 주워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시원하고 단 맛을 못잊어
해마다 홍시 몇 개씩을 집어먹으며
파생되는 생각의 감씨 몇 개 모으다 보면
감의 일생이나 사람의 일생이나
아울러 분재인의 일생이나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나무는 봄의 성장이 비교적 늦게 시작하는 나무입니다.
다른 나무들이 모두 잎과 꽃을 피운 다음에서야
죽은 듯이 기다리다가 5~6월경 슬며시 꽃을 피웁니다.
이렇게 핀 꽃들이 모두 감으로 익어가지는 않습니다.
많은 감꽃들이 힘들 게 세상 구경을 나왔다가
봄이 끝나갈 무렵 하엽없이 지고 말지요.
많은 분들이 분재의 봄을 시작했다가
이 무렵 스스로를 포기하곤 합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맺은 감들은
한여름이 지나면서 뭉실뭉실 커나가게 됩니다.
살을 찌우고 씨를 키우며
비로소 감나무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이 시기가 되면 분재인의 식욕도 왕성해집니다.
수많은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면서도
여름날 감잎처럼 늘 목이 마릅니다.
그렇게 가을이 시작될 무렵
문제는 여기서 생겨납니다.
외형상으로는 주황색으로 익어가는데
어떤 감은 무지하게 떫다는 것입니다.
분재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기가 바로 이때지요.
이때쯤 되면 입이 간지럽고 손이 가만있질 않습니다.
앞에 누가 서있든 아는체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어느 고수가 잡아놓은 나무라도 가지 하나쯤은
제 맘대로 비틀어놓아야 성이 풀립니다.
다른 사람이 분재의 분자만 꺼내면
청산유수가 되어 설익은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잘익어가는 홍시를 보고서도
왜 그렇게 단단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기도 하는 것이
이시절 감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인생의 사춘기같은 시절이지요.
사람의 생명을 부여받아
하나의 인격체로 바로 서기전에
이 시기를 준비해둔 것은
떫은 감이 그러하듯
인생 역시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그래서 멋모르고 감을 따먹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감은 감이되 감이 아닌 시절이지요.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면
감은 비로소 단내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서리가 내릴수록
감은 더욱 농밀한 맛과 향으로 익어갑니다.
색깔도 탐스럽게 변해갑니다.
저 역시
아직은 저렇게 농익은 홍시가 되지 못했기에
세월을 다독이면서, 손끝을 익혀가면서
늘 가지끝에 매달린 까치밥을 꿈꿉니다.
언젠가 단단하게 뭉친 것들을 모두 풀어헤치면
나의 분재, 내 인생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것들이
겨울이 시작될 무렵
까치밥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좋은 하루 시작하시지요.
예솔지기 드림
댓글목록
박세강님의 댓글
박세강 작성일
마지막 구절은 너무 겸손하신 말씀같습니다.^^
가슴에 확 와닿는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경술님의 댓글
이경술 작성일겉으로 보기에도 먹음직 스럽고, 내실은 생각보다 더 맛있는 홍시가 되는 길이 언젠가는 있겠지요? 인생의 사춘기를 넘어서 성숙한 인간미가 느껴질때가 언제일런지....많은 교훈을 담은 글 입니다.오랫동안 많은걸 생각하게 합니다.잘 보았습니다.
이경술님의 댓글
이경술 작성일헌데...감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지 않는 까닭이 궁굼해지네요! 벌레가 없어서 입니까? 아니면 사람이 가까이 있어서...? 감나무 잎이 커서 둥지를 감추기엔 안성맞춤일거라 생각드는데....
예솔지기님의 댓글
예솔지기 작성일글쎄요, 아무래도 두가지 이유가 다 해당되지 않을까요? 감나무 잎은 두껍고 윤기가 많아 새들이 더불어 살기에는 조금 부적할것 같기도 하고....
탁경민님의 댓글
탁경민 작성일
이경술님 안녕하세요. 둥지라!!
감나무 특성상 잎이크고 가지마름이 심하니
둥지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지 않을런지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항상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응원합니다.
이경술님의 댓글
이경술 작성일탁경민님! 반갑습니다.그런 연유도 해당이 되겠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감나무에 새 둥지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예솔에서 분재말고도 배울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박성우님의 댓글
박성우 작성일
예솔지기에가입후 많은걸배우고 또한즐감합니다 미약하나마 언젠가는저도 예솔의인이되어 모두가함께하는
그러한날이 오겟지요 항상지기님의 하시는일마다 차고넘치는날만가득하길 빌어봅니다
예솔지기님의 댓글
예솔지기 작성일박성우님, 예솔지기에 가입하지 마시고 예솔에 가입했다로 고쳐주세요. 사람이 하나 제몸에 들어오니 제가 많이 아파요.ㅠㅠ
이상주님의 댓글
이상주 작성일
오랜만에 들렀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감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아마도 고향집 언덕에 매년 가을 붉게 물들던 감단풍과 긴 장때로 감따던 추억 때문이리라 여겨 집니다.
그런데, 정말 새로운 사실. 정말 감나무엔 새 둥지가 없네요!
이영수님의 댓글
이영수 작성일예솔지기님의 글을 읽고있자니 다시한번 겸손의 미덕이 필요함을 느낍니다.예솔지기님이 이토록 겸손하신데 저는 언제나 단내를 풍기는 감이 될른지 아득하기만 하군요.고개를 숙이게하는 조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