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뽑는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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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esolgiki 작성일04-03-05 09:38 조회1,88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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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뽑는 아이에게
지난 번 처음으로 우리집을 찾아온 너에게
화분의 풀을 뽑으라고 한 것은
일손이 부족해서도, 풀이 너무 우거져서도 아니었다.
진급이 되어 네가 우리반이 되고 나서도
너는 네 마음대로 학교에 오지 않았다.
몇번의 연락으로도 안되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너희집을 방문까지 했어도
너는 좀체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로 너는
너 스스로를 무너지고 있었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며칠 쉬는 동안
네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학교도 쉽게 빠지는 네가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집으로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네가 입은 옷을 보고
네 마음의 변화를 읽으며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최소한 너는 우리집에 구경이나 하려고 놀러온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풀을 뽑는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 여기 있소하고 싹을 내민 풀들을
하나하나 뽑아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너 역시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쉽게 분에 달려들어 하나하나 풀을 뽑아가며
깔끔하게 정리되는 분이 너에게는
작은 성취감마저 안겨 주었을 테니까.
그러나 평소 그런 일들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상당히 힘들어하더구나.
그랬다.
참 쉬워 보이는 풀 한 포기를 뽑는 것도
제대로 하자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먼저 분 안에 있는 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야 한다.
풀을 뽑으면서 빼먹어도 될 성싶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풀이나
낙엽에 묻힌 것들을 남겨두게 되면
이 풀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서
네가 풀을 뽑았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방심하면서 몇 개 남겨둔 작은 풀들이
종래는 네 수고와 정성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풀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력을 얻게 되면
네가 가꾸어가야 할 나무는 쇠약해지기 마련이어서
분에 있는 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하나의 풀도 제대로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잡초라 하는 것들은
누가 뿌리지 않아도 바람결에 실려와
제가 살고 싶은 아무 곳에나 쉽게 뿌리를 내린다.
마치 너에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네 마음대로 학교에 빠지고 또 그런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처럼
잡초는 애써 심지 않아도 잘 자라고
돌보아주지 않아도 무성한 숲을 이룬다.
그런 풀들을 눈에 띄는대로 대충 뽑다보면
윗부분이 쉽게 잘려 뿌리는 그대로 분안에 남게 된다.
그리고 그 뿌리는 다시 싹을 틔워 올려
예전보다도 더 단단한 뿌리로 분안을 점령하고 만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결점만 고치고
마음까지 뜯어고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아예 몹쓸 풀이라면
어린 싹이었을 때 뽑아내야 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풀들은
이미 분 속 깊숙히 뿌리를 내려
뽑는데 상당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런 잡초들은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꽃을 피우고
사방에 악의 풀씨들을 퍼뜨리게 된다.
그러나 어린 풀들은
손가락 힘만으로도 가볍게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풀 하나를 뽑음으로써
나중에 묵은 풀을 뽑아내는 수고를 덜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쯤이야 하고
어린 풀들이라 하여 방심하게 되면
그 풀들은 어느새 단단한 뿌리를 네 마음에 내리게 된다.
습관도 이와 같아서
오래되어 굳어진 습관은 하루 아침에 고치기 어렵지만
잘못을 깨닫는 순간 고쳐나가게 되면
이 습관은 너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네 번째 무엇보다 네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이렇게 풀을 뽑은 다음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에는
다시 분을 둘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으로
안이하게 지내다 보면
네가 풀을 뽑으면서 남긴 잘린 뿌리 하나가
또 하나의 잡초가 되어 자라나기도 하고
이미 뿌려졌던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도 한단다.
그래서 네 마음을 항상 정갈하게 하려면
한번의 풀뽑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두 번 세 번 다시 살펴보아야
처음 풀을 뽑던 마음 그대로를 유지할 수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고
쉬워보이는 작업이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다.
그러나 지금까지 너는
옆에서 사람들이 다그칠 때마다
그저 풀을 뽑는 시늉이나 하면서 살아오진 않았는지.
내일 모레 하면서 미루고만 살아오진 않았는지
풀을 뽑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면서 네가 모처럼 방문해서
하나 둘 다듬어가고 있는 이 화분들처럼
네 마음밭에 널린 잡초들을 제대로 뽑아내어
네 마음에 심은 꽃나무 하나
정말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으면 싶다.
그럼 잘 지내거라.
댓글목록
조규용님의 댓글
조규용 작성일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강규영님의 댓글
강규영 작성일
나무를 키우고 돌보다 보니 사람 사는게, 사람 대하는게, 사람들 생활상들이 온통 관심과 인내 그리고 정성들의 하모니가 이루어 질때가 아닌가 싶어요. 선생님의 1인 다역이 다 그런것인가 봐요.
우리의 꿈나무들 예솔의 나무들처럼 잘 키워주세요..그리구 원장님의 그런 노력과 노고에 감사드리구요.. 그 학생 아마도 바르게 잘 성장 할껏 같네요..그눔은 행복한 눔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