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가 울긴 왜 울어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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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esolgiki 작성일10-08-26 10:05 조회1,998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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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가 울긴 왜 울어
3부- 하늘이 내린 정원
소나무는 햇볕과 바람으로 자랍니다. 길을 가다가 눈에 확 띄는 소나무들을 살펴보면 대개가 홀로 서있는 나무들. 그리고 아주 오래된 나무들이 대부분입니다.
홀로 서있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과 햇볕을 충분히 받기 때문에 굳이 위로 뻗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래 가지부터 튼실하게 자라면서 전체적인 모습을 이루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여 마냥 감탄만 할 일은 아닙니다. 홀로 서있기에 태풍도 가뭄도 혼자 감당해야 하고 겨울에 내리는 눈도 혼자 다 뒤집어 써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나무들은 바로 이런 시련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륙이 아닌 바다의 한 가운데서 거칠 것없는 바람과 바위에서 반사되는 햇볕에 노출된 환경이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그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람과 햇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지고 나무의 생명력이 더해져서 이룬 이 아름다운 조화 그러나 혹시 아십니까? 나무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를 치장한 것이 아니라 바람과 햇볕을 최대한 잘 받기 위해 나무 스스로 선택한 모습이라는 것을. 타고난 유전자를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다보니 절로 감탄사 쏟아내야 할 정도로 변했다는 것을. 이렇게 스스로에게 충실한 시간이 쌓여 나무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리고 우린 그 생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구요.
남자가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S라인이라는 것이 사실은 다산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풍만한 젖가슴과 커다란 엉덩이이에서 우리가 미의식을 느끼는 것이 바로 자손을 대대로 번식시키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아름다움의 뿌리는 바로 이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체의 선에서 이른 바 문인목이라는 수형이 만들어지고 고려 청자가 만들어지고 엉덩이 풍만한 백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명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저 수목이야말로 말 그대로 미의 화신이 아닐지...
산자락마다 만들어진 이 황홀한 생명들은 바위와 해풍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저렇게 푸른 생명을 키워갑니다. 아름답다. 황홀하다.
옆에서 누군가 말합니다. 모두 캐가고 싶지? 아니요. 저 나무들은 이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울려 있을 때 더 아름답지요. 이 나무들 욕심대로 모두 캐간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풍경을 못보게 되잖아요. 나무를 캐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낄 감동을 빼앗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미 홍도는 바위와 나무들로 그 아름다움을 완성해놓았거든요. 빈자리가 생기면 절대 안되지요.
다만 이런 욕심은 생깁니다. 이 바위 골짜기 골짜기를 누비며 나무 한주 한주를 카메라에 담고 싶은 생각, 멀리서 보는 느낌이 아니라 더욱 가까이서 이 나무들의 생명력을 담아내고 싶은 생각
언제 다시 한번 오고 싶네요. 그땐 유람선이 아니라 자그마한 배를 전세내고 카메라도 망원렌즈를 달고 말이예요.
운무에 가린 봉오리. 저 산은 내마음 알까?
저렇게 많은 나무들이 모여야 비로소 정원이 됩니다. 저렇게 많은 바위들이 모여야 비로소 홍도가 됩니다.
섬에서 밀려난 또 하나의 섬. 갈망하듯이, 원망하듯이 둘이 나란히 어미를 바라보듯 서있는 섬에서 왜 갑자기 인생사가 떠오르는걸까?
아!!
왜 그러는데 왜 사람 미치게 하는 건데 이 풍경은 무슨 말로 설명해야하는건데?
정말 미치겠네.
위 사진 일부를 확대한 모습입니다. 속된말로 이르면 어느 시골지역의 아파트 한채값은 될 듯..
새롭게 보이시나요? 사실은 편집과정에서 중복된 사진인데... 이렇게 놀라운 변화와 많은 수목들은 우리들의 기억조차 깜빡깜빡 지워 버리곤 합니다.
이 나무들을 보면서 존재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습니다. 새로 눈이 열리고 가슴이 열리고 그 벅찬 감동이 여기가 바다 한가운데라는 사실도 잊게 만듭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았기에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저 나무 줄기 하나에 몇 개의 태풍이 감겨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가뭄이 머물다 갔을까요?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절망과 기다림이 새겨져 있을까요? 우린 이런 것들을 통털어 아름다움이라고 부릅니다.
그 아름다움들이 이렇게 모여 또 하나의 미래를 열어갑니다. 포기하지 마라. 절망하지도 마라. 늘 이렇게 파란 잎으로 깨어있으라.
나이로 치면 증조 할아버지쯤? 아니 그보다 훨씬 윗대의 할아버쯤 되었을 나무들 이 지역의 자연 환경을 이해한다면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자그마한 나무 하나도 아마 백년쯤의 고독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고독의 결정체들이 숲을 이룬 곳 입만 못벌린 채 연신 셔터만 눌러댑니다.
거대한 석부작? 사실 이 정도 되면 언어란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바위의 붉은 빛과 나무의 초록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듯 우리네 인생도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여 빚어낸 한폭의 풍경화같은 것이 아닐지.
이 아름다운 자연의 병풍
전편에 제가 그랬죠? 맑은 날 골라서 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 사진 보니 그런 생각 드네요. 정말 좋은날을 선택한 느낌. 맑음과 흐림, 거기에다 운무까지....
내일에 대하여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저녁에 잠들 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설레임을 안고 잠이듭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풍경이 나타날까. 그리고 이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기를.... 참 욕심 많죠? ㅎㅎㅎ
사진을 찍을 때는 그쪽 방향으로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집에 와서야 비로소 나무를 찾는 뒤바뀐 순서 이 사진에서도 기억에 없는 그림같은 나무 한주를 발견해놓고 저 혼자 흥분합니다.
이참에 신선이나 되어볼까? 바라볼수록 아름다운 국토.
절경 산수경석을 보는 듯 가끔 남방의 절경 사진을 보면서 감탄사를 쏟아냈다가 비로소 우리것을 발견한 느낌. 대학 다닐 때 자주 놀러갔던 격포 채석강에서 본 풍경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이 풍경에 다시 넋을 놓습니다.
이중에서 아무 나무나 한주 분재대 위에 올려놓으면 홍도의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느낌. 여러분은 어떤 나무가 맘에 드세요?
이 무한한 감동 앞에서 삶의 우여곡절을 걸어온 동안의 현자를 만나는 듯한 느낌을 안고 다음 이야기를 기약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굽이에는 어떤 그림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여러분의 관심과 댓글이 다음 글과 사진을 빨리 불러옵니다.
행복한 시간 채워가십시요. 예솔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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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성표님의 댓글
장성표 작성일
홍도의 나무와 바위도 예술, 사진도 예술, 미치도록 잘 쓰여진 글귀는 더더 따블 예술, 난 갔을때 못 느낀 많은 감정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감사합니다.
이진호님의 댓글
이진호 작성일지는 벌써 한넘 산채해서 화분에 심었습니데이~~~~
이용배님의 댓글
이용배 작성일
정말 하늘이 내린 정원입니다.
사진감상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