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가 울긴 왜 울어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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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esolgiki 작성일10-09-01 10:50 조회2,278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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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가 울긴 왜 울어
4부- 분재의 조건
분재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세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가 균형입니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굵기나 가지의 크기 나무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정형을 이룬 것들은 대개 직간이나 모양목 등으로 불리워지는 전형적인 나무들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김태희 정도 된다고나 할까요.
등대. 비록 작은 몸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있지만 이 자그마한 존재가 수많은 배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인도합니다.
두 번째가 조화라는 덕목입니다. 가지의 굵기나 잎의 크기 그리고 건강도등. 쉽게 말해 도장하는 가지를 자르고 길게 자라는 새순을 자르는 것은 바로 이런 가지나 잎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하나가 삐딱하게 드러나지 않고 가지 전체가, 혹은 잎 전체가 같은 성장속도를 유지해서 속잎도 마르지 않고 아랫가지도 약하지 않도록 컨트롤 하는 것 누가 보아도 나무 전체가 안정감 있고 평안해 보인다면 이 나무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으로 보면 됩니다.
마치 태산 준령을 보는 듯. 이렇게 놓고 보니 한켠으로 비켜선 등대가 이채롭습니다.
나무를 하나의 사회로 놓고 보면 가난한 자도 부자인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좀 모자라는 사람도 고루 잘사는 선진 사회. 지금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경쟁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 노수 거목이나 잘 가꾸어진 분재는 그런 이상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석부작을 보는 느낌. 나무와 바위의 조화가 경탄 그 자체입니다.
사람도 그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어서 생긴대로 살아온대로 모두 강한 개성(뒤에 뜻풀이 나옴)을 가지고 있지만 나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세파에 각진 모서리는 깎여나가고 조약돌처럼 둥글둥글해지는 것. 분재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성질 급하고 개성 강한 성격이 분재와 함께 오랜 세월 함께 하다보면 모났던 성깔머리도 많이 수그러져서 가장 평안한 얼굴로 돌아옵니다. 인격완성. 우리는 그것을 분재의 조화에서 찾습니다.
세 개의 봉오리. 뒤에 녹색의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 이채롭기까지 합니다.
아름답다라는 감탄사를 불러내는 길가의 나무들을 보면 한결같이 잘만들어지고 다듬어진 분재를 떠올립니다. 우리가 존경한다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분 역시 티나지 않는 인격자일 경우가 많습니다.
완벽한 산수경석. 자연이 이루어낸 완벽한 조화에 그저 넋을 놓습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처음에는 가지 하나를 세워 위로 위로 자라납니다. 해가 가면 옆으로 가지 하나하나를 뻗어냅니다. 젊음은 도전이며 약동입니다. 이렇게 한해 두해, 십년 이십년.... 나무는 주위 환경과 타협하며 스스로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백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아!!!!
나무의 수령이 백년이 되면 이 나무는 거의 완벽한 틀을 다집니다. 길 게 도장했던 가지도 수그러들고 전체가 하나가 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40대. 그림같은 원숙한 아름다움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어디로 향한 문일까? 바다? 천국? 아니면 우리들의 닫힌 마음을 경계하는 신호?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완벽해진 나무. 나무 스스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층을 이루고 수관을 둥글게 한 것이 아니라 바람과 햇볕을 가장 충실하게 받기 위한 나무의 본능이 사람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연이 이루어낸 최상의 조화. 그것이 궁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인간 역시 그런 조화로움을 미의식에 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다를 바라보는 큰 바위 얼굴같은.
이렇게 균형과 조화를 갖추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찬탄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면 세상은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고 그게 사람이라면 참 원만한 인격자라고 존경받을 것이며 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참 예쁘다라는 소릴 듣게 되겠지요. 그러나 뭔가 부족합니다. 그 부족함이 무엇일까요?
그대 지금 파도가 속삭이는 소릴 듣고 있는가?
그래서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바로 변화라는 요소입니다. 균형과 조화만 있게 되면 세상은 모두 천편일률이 됩니다. 잘생기기는 했지만 그 나무가 모두 그 나무입니다. 나무와 나무를 구별하게 하는 것 사회와 사회를 구분하게 하는 것 사람과 사람을 구별하게 하는 것 그것을 개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한 개성이 개같은 성질의 약자였다면 여기서 말하는 개성은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느낌 우리가 알고 있는 말 그대로 개성인 셈이지요. 이 개성이 변화의 주춧돌이 되어 다양한 인격과 다양한 사회와 다양한 분재 작품들을 만들어냅니다.
바위에 난 구멍. 이것이 바로 변화의 힘이 되겠지요.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분재계는 균형과 조화만을 찾았습니다. 그것을 정통이라고 불렀으며 그 룰에서 벗어난 것을 특수목이라 이름지어졌지요. 일부 분재인들은 그런 특수목을 가리켜 이것도 분재냐면서 백안시하는 분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왼쪽 위에도 변화의 한점이 보입니다. 누구는 화룡점청이라고 부르기도 하구요.
그런데 혹시 아세요? 분재도 성격대로 간다는 것. 예를 들어 FM대로 살아온 분들은 모양목을 선호하고 여유가 있고 성격이 급하지 않은 분들은 문인목이나 현애수형이 우세하고 전형적인 군인이나 경찰분들은 직간목을 선호하는 것....
다양함이 서로 존중받으며 어우러지는 사회. 그것이 축복받은 사회가 아닐까요?
그러나 예솔지기처럼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특수목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변화가 많고 재미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직간이나 모양목을 등한시 하지도 않습니다. 특수목을 조금 더 좋아한다는 뜻이지요.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이 풍경을 안견이 보았다면 몽유도원도에 홍도의 모습도 담겨있지 않았을까?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통목만이 분재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변화라는 덕목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술 더떠 이 변화의 정도가 심한 작품들은 일반 정통목에 비해 더 고가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를 추구하는 특수목은 어떤 나무일까요? 아무렇게나 생긴 나무 모두에게 우린 특수목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위의 사진에서 한주 크게 확대해보았습니다. 늘어진 가지가 이채롭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 변화 속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기본과 원칙을 갖춘 다음 변화를 추구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재를 골라내려니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닙니다.
다시 산수화를 선보입니다. 사진의 일부분을 확대하기 위하여 작업하다가 실패한...
이렇게 기본을 갖춘 소재를 골라내어 그 나무에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것 그러면서 균형과 조화를 갖추도록 가지를 배열하고 그 안에 역동적인 힘을 갖도록 하는 것...
운무에 가린 산봉오리. 홍도를 일주하는 2시간동안 이렇게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무 어려운가요?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순을 자르거나 철사를 감는 것보다는 이런 말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게 되면 이미 여러분은 분재작가입니다. 목표에 눈을 두고 걸어가다보면 지금은 비록 멀리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도달하게 될테니까요.
동양화속을 거니는 느낌일까요?
왜 분재를 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분재가 좋아서 한다고 그래도 다시 왜 분재를 좋아하느냐고 물으시면 분재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내가 살아가야할 삶의 방향을 발견하고 스스로 균형과 조화, 거기에 변화를 추구하는 완전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라고...
자연은 이렇게 완벽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눈에 잘 띄지 않게 감추어두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미심쩍어 다시 물으면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계가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자투리로 몇 개 더 이르라 하시면 녹색의 식물이기에 보고 만지는 동안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몇시간을 걸쳐 손질해놓으면 그 변화된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르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마지막 하나 더 분재를 하느냐고 물으면 철사를 감고 도장한 가지를 자르면서 분재도 마음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짓궂은 예솔지기는 그 감추어둔 나무 한주를 이렇게 끌어내기도 하구요.
무슨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누가 물으면 그냥 분재가 좋아서라고....
다양한 삶의 모습이 모여 전체를 이루어갑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가 굳이 이렇게 분재를 정의할 필요는 없을 듯도 싶습니다. 내가 마음을 주고 거기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모든 식물들은 스스로 존재할 가치가 있을테니까요 아니 그런 것이 없어도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모습의 존재들.
저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 눈에 띄는 나무도 있지만 눈에 띄지 않고 한무더기로 보이는 나무들이 더 많습니다. 저런 나무들 역시 홍도를 이루는 중요한 존재이고 보면 좋은 것과 별로인 것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양한 수형의 모습만큼이나 우리 살아가는 삶 역시 이렇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은 아닐지.- 홍도생각
그것이 아무리 작은 묘목이라도 보잘 것 없는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거기에 삶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면서 변화를 함께 이루어나간다면 우리네 삶이 비록 작고 내세울 것 없어도 이 나무들처럼 모여 홍도를 이루는 것은 아닐지.
저 동굴 안에는 거꾸로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삶이란 아주 단순하다가도 복잡해집니다. 동굴 위의 모습입니다.
억센 비와 바람속에서도 곧바로 선 나무가 더 위대해보입니다.
한나무 한나무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겠지요. 마치 우리들 얼굴처럼요.
여기서 잠깐 시계를 보았습니다. 이제 거의 다 돌아온 듯....
가운데 있던 나무를 끌어당겼습니다.
옅은 구름과 검은 산.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바위
이번 회는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상념들을 퍼즐처럼 맞추어가다 보니..
빈 공간으로 남겨진 부분은 이제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음에는 홍도가 울긴 왜 울어 마지막회를 올려드리겠습니다.
태풍이 한반도를 지난다고 합니다. 홍도의 나무들은 무사할지... 아니 무사할 것입니다. 천년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나무들이니까요.
이번 태풍 무사히 넘기시길 빕니다.
예솔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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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성표님의 댓글
장성표 작성일
멋진 그림에, 분재에 대한 명언까지...
"분재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깨달음. 내가 살아 가야할 삶의 방향을 발견하고 스스로 균형과 조화, 거기에 변화를 추구하는 완전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 캬!!! 가슴에 새기고, 즐감했습니다.
조의행님의 댓글
조의행 작성일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하고.. 특별히 좋은 말씀도 가슴깊이 새겨 넣습니다. 분재는 무엇보다도 항상 변화를 통해 사람을 깨어있게 하고.. 기다림을 알게해 주고.. 때로는 희노애락을 느끼게 하며.. 무엇보다도 삶을 여유롭게 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
이재룡님의 댓글
이재룡 작성일조의행님, 고맙습니다. 그 부분은 저도 공감하는 부분인데 빠졌네요. 마지막회에 반드시 넣겠습니다.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