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가 울긴 왜 울어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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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esolgiki 작성일10-09-07 10:52 조회2,189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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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가 울긴 왜 울어
5부- 불타는 홍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거의 끝나갈 시간입니다. 가까운 곳에 우릴 따라오는 유람선이 보입니다. 그 배에도 홍도의 비경에 취한 누군가가 저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홍도에 넋을 빼앗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삶의 한 부분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부분이 있었다면...
지난 회에서 분재의 조건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우리 회원님 한분이 분재의 미덕에 관련된 댓글을 올려주셨더군요. 이번회에는 사진이 적어서 간단하게 분재의 미덕과 기타 몇 개의 사념들을 적어보렵니다.
위의 사진을 부분 확대한 모습. 한주 한주가 눈에 박힐 듯 다가옵니다.
분재를 하는 사람의 미덕을 꼽으라면 지난 회에 말씀드린 대로 균형과 조화를 갖춘 인격 완성이 가장 우선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너무 거창해서 조금 막연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석부작을 보는 느낌. 나무와 바위의 조화가 경탄 그 자체입니다.
첫째는 스트레스를 해소시킵니다. 나무를 매만지고 있는 동안에는 온갖 잡념이 모두 사라집니다. 피곤함도 사라집니다. 녹색이라는 생명 물질이 가져다주는 평안함은 이미 식물 치료라는 분야를 개척했으니 더말할 나위도 없고 나무를 매만지고나서 마치 이발을 한 듯한 산뜻한 느낌. 손을 댄만큼 예뻐지는 그 모습이 하루종일 손에 송진을 묻혀가며 철사를 감는 수고를 기쁨으로 돌려줍니다. 제가 학교일 끝나고 밤늦게까지 나무를 손질해도 작은 체구에도 아프지 않고 잘 견디는 것은 바로 이런 면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최소한 나무를 매만지고 있는 동안에는 온갖 세상사에서 놓여날 수 있고 그런 동안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아서 내일을 향한 힘을 충전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둥근 봉오리같은 모습으로 흙을 담아 새 뿌리를 키워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웁니다. 기다림이라고 하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이 기다림에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루는 우리 선조들의 깊은 멋이 숨어있습니다. 맨처음 분재를 시작할 단계에서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수시로 가지를 자르고 철사를 감고 때론 무리해서 분갈이도 하면서 유난을 떨게 됩니다. 그러다 한두주 급한 성질 때문에 죽여본 다음에는 아, 이것이 아무 때나 하는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순을 집어야 할 때, 철사를 걸어야 할 때, 잎을 뽑거나 솎아주어야 할 때 그리고 분갈이해야 할 때 등등을 알 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더 많은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기다림이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나와 나무와 자연의 섭리를 조화시키는 놀라운 내공이 숨어있습니다.
어찌보면 평범할 것 같은 산등성이에도 천년 세월을 견뎌낸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비움의 철학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 만사 내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 사십은 넘어야 알게 되듯 나무 역시 맘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하루하루 물을 주고 때맞춰 거름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면서 비로소 천개의 계단을 오르듯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다보면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얼른 그럴 듯한 나무로 만들고 싶은 욕심 빨리 자라게 하고 싶은 욕심. 그래서 무리하게 화학 거름을 쓰기도 하고 심하게 나무를 구부려 죽이기도 합니다.
모처럼 만난 평범한 골짜기도 주변에 기암괴석을 둘러 예사롭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 다룰 문제는 나무는 생명의 가치를 깨우쳐줍니다. 좁은 분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신기하지만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무의 밑동에서 새순이 올라올 때의 모습. 비록 분재로서의 가치는 잃어 버렸더라도 생명이 보여주는 지고지순함에 반성, 또 반성을 하게 합니다. 누구는 마지막 남은 잎새 하나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오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나무가 보여주는 이 눈물나는 생명력은 나무 역시 살아가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파도. 이렇게 영겁의 세월을 두드리면서 바다와 바위가 살을 섞어 빚어놓은 것이 홍도가 아닐런지.
어떤분이 그랬습니다. 왜 분재를 하지? 그러더니 자문자답을 합니다. 외로워서 그래. 맞을 것입니다. 나이 사십을 넘기면 사람은 공허해집니다. 마눌님의 관심은 온통 자식한테로 옮아가고 직장에 오면 오만한 상사와 치고 올라오는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샌드백이 되어 두들겨 맞습니다.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짓밟힙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데도 없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기도 하지만 그들은 내가 타고 다니는 차와 지갑에 대해 관심이 더 많습니다. 이래저래 오갈데 없는 마음으로 이것 저것 두들겨보지만 마음을 붙잡아주는 것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다가온 분재는 구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붙잡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해주니까요.
유람선이 끝나갈 무렵 다가온 배에서 즉석회를 만들어주는 모습. 비록 저 물고기들이 양식이라 해도 바다 한가운데서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먹는 회맛은 일품이더이다.
분재는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갖습니다. 다른 취미활동은 활동하는 가운데서 경비로 대부분 빠져나가지만 분재는 기술은 항상 덤이고 분재 그 자체는 남습니다. 하다못해 화분이라도 남게 되지요. 물론 상품으로서의 분재는 물값도 못한다지만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다든지 외로움을 풀어준다든지 하여 이미 제 몸값 이상은 해낸 터이고 상당한 작품성과 장래성을 갖고 있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투자가치를 갖습니다. 돈도 벌고 취미생할도 즐기고.... 돈이야기를 하니까 좀 그렇긴 하지만 분재는 투자한만큼의 가치 이상을 돌려줍니다.
홍도여 영원하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나무가 내 손자의 손자가 다시 볼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분재는 발견의 기쁨을 안겨줍니다. 분재원 한쪽 구석에서 버려진 나무. 주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남들이 스쳐간 자리에서 알이 풍성한 이삭을 줍는 듯한 기쁨. 과거에는 대개 산채를 통해 분재를 했기 때문에 분재는 발로 한다고 했지만 여기저기 분재원을 돌아다니면서 분재대 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풀이 무성한 한곳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에 안겨오는 그런 소재가 있습니다. 마치 보물을 만난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을 정성껏 손질하고 가꾸어서 보배로 만들어가는 기쁨. 먼저 안목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어느정도 안목이 갖춰진 다음 소재 사냥을 통해 얻은 이 소중한 전리품은 두고두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 한곳만 가져다가 정원을 만든다 해도.... 혼도는 섬 자체가 대한민국의 숨겨진 정원이었습니다.
그외에도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미적 감각을 키운다든지 하는 분재가 가진 미덕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아래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도 달아주세요. 우리 함께 분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요.
처음 출발했던 항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나기"를 쓰셨던 황순원님의 아들 황동규님은 "즐거운 편지"라는 시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밤이 되면서 골짜기에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눈부신 풍경을 기다려야 할까요?
이 절경을 다시 볼 것을 그때는 카메라 렌즈도 따로 준비하고 경비가 좀 들더라도 배 한척을 전세내어 홍도의 구석구석을 담아보고 싶어집니다. 홍도의 맑은 물이 더 맑아져 속살까지 드러내는 계절이 오면 집사람이랑 아이들이랑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항구가 보이는 곳에서 뜻밖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홍도는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양식장에서 나온 폐스치로폼이며 화학제품을 태우는 듯 검붉은 연기가 거세게 해안 하나를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세계 자연환경 보존지구로 지정된 이 청정한 곳 바다 한가운데서 오염될 것도 오염시킬 것도 없을 것 같은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이 곳을 누군가가 불을 놓고 있었습니다.
보이시는가요?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타고온 배도 보입니다. 여기저기 쓰레기를 주워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저렇게 불을 피우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홍도를 보존하기 위하여 나서야 할 사람들이 자기들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이런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더구나 여기는 세계적인 천연자연 보호지구입니다. 옆에 있는 선생님이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합니다. 아!! 홍도여
이번에 태풍 곤파스가 다시 한번 홍도를 후려치고 갔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원래 악조건 속에서 묵묵히 견뎌온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외상은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디 무사하기를...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그동안 모자란 글과 사진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한가위 맞으십시요.
예솔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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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조의행님의 댓글
조의행 작성일맨처음 비좁은 집안에 화분 하나를 들여놓은 것이 대략 20여년 전 쯤.. 물이나 주고 가끔 비료나 얹어주고 웃자라면 가위질이나 하고.. 그렇게 초보상태로 10여년 넘는 세월이 훌쩍 흘러가고.. 그러다보니 초기에 키우던 녀석들은 나무도 아닌 것이 분재도 아닌 것이..단지 계륵같은 녀석들을 아직도 몇주 끌어안고 갑니다. 가끔 그녀석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과거를 통해 오늘을 배우게되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마음을 비우지 못해 기다리지 못하고..성급한 분갈이 때문에 아이들을 고생시키며.. 단번에 작품을 만들고자 억지철사감기로 학대하고.. 섵부른 가위질을 해대기 일쑤랍니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편이니 세월을 그냥 까먹은 건 아니겠죠? ㅎㅎ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홍도의 아름다움이 곤파스로부터 꿋꿋하게 버텨냈기를 희망합니다. ^^*
장성표님의 댓글
장성표 작성일
흑산도를 향하여 부터 시작하여 불타는 홍도까지
원장님의 그림을 잡는 솜씨부터 여행기, 가슴에
와 닫는 분재의 오묘한 말씀까지.
한가지도 그냥 지나칠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슴에 새깁니다.
아울어 조의행님의 좋은 말씀도 간과할 수 는 없네요. 두분 다 좋은 추석명절이 되시길 빕니다.
최강삼님의 댓글
최강삼 작성일수십억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홍도의 비경과 조화를 이루며 꿋꿋이 오랜세월을 견뎌 낸 나무들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한 세상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상처...... 분재에게서는 자신만의 표현으로 구상하고 정을 주고 가꾸면서 탓하지 않고 인내 하면서 기다리고 배신하지 않음 그속에서 얻는 편안함과 만족감 그런게 좋습니다. 자연에 맡겨 잘 기다려 온 인내와 생명이 빚어낸 자연 분재원 홍도 선생님의 좋은 필치와 함께 잘 여행하였습니다.
정윤형님의 댓글
정윤형 작성일좋은구경 덕분에 앉아서 잘하였습니다.이선생님 글또한 홍도 풍경과 견줄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