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를 통해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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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4-04-20 10:00 조회2,29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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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셨군요.
맨처음에는 조금은 거부감을 느꼈더라도
돌아서면 다시 보고싶은 것이
아름다움이 주는 매력이랍니다.
전람회라든지, 전시회라든지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재 역시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오늘은 예전에 약속드린 것처럼
분재를 통해 제가 깨달은 바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시골구석에서 사는 촌부의 목소리라 생각하시고
다소 귀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은 커피 한잔과 함께
제 말씀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기쁨은
뭐니뭐니 해도 녹색이 주는 싱그러움일 것입니다.
세상의 그 많은 색깔들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안정시키는 색은 녹색이라고 합니다.
굳이 분재가 아니더라도
식물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정갈하게 가라앉히는
불가사의한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굳이 분재를 고집하는 것은
다른 식물들이 분에 심어 그 싱그러움만을 취하는 것에 비해
분재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력 넘치는 녹색이 주는 싱그러움에
아름다움을 유지해나가고 창조해가는 기쁨이야말로
분재를 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 중에서
분재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따로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균형과 조화라는 아름다움입니다.
분재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분재는 일정한 기간 분에서 생활하다보면
도장지가 줄어들고 잔가지가 발달하게 됩니다.
이 말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다른 가지야 죽든 말든 자기만이 살아남기 위하여
영양분과 햇볕을 독식하던 방자한 혈기에서 벗어나
더불어 같이 사는 법을 터득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무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 공존공생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뜻이 됩니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이라면
나이를 먹을수록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 되듯이
정성과 노력이 깃든 분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름다워집니다.
자잘하게 줄어든 나뭇잎과
하얗거나 거칠게 변하는 수피,
잔가지가 발달한 가지 등에
세상을 살아온 이력을 그대로 담아내게 됩니다.
오래 묵을수록 향기가 깊어지는 포도주처럼
분재 역시 켜켜이 내려앉은 세월 속에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서게 됩니다.
다음에 배우는 덕목은
무욕(無慾)의 삶의 자세입니다.
나무는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철이면 무성하게 우거졌다가도
가을이면 한 점 남김없이 모두 낙엽으로 쏟아냅니다.
상록수라 하더라도
그 잎을 몇 년이고 지켜가는 나무는 없습니다.
한번 얻은 것은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체면도 인간적 체모도 모두 내버린 채
줄줄이 교도소로 엮여가는 인간사와는 달리
분재는 한해동안 애써 키워왔던 잎들을 버리고
오랫동안 묵혀놓은 묵은 뿌리를 잘라냄으로써
해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힘을 얻습니다.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통하여
나무는 거의 무한한 생명을 향유합니다.
세 번째 배우게 되는 것은
나무를 통해 준비하는 습관을 배웁니다.
당장 코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항상 허둥거리는 인간사와는 달리
나무는 내년 봄에 피울 꽃들을
올 여름에 미리 준비합니다.
열흘을 피우기 위하여
일년 전부터 미리 세심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년 봄을 준비하기 위하여
여름이 꺾일 무렵 미리 잎눈을 준비합니다.
가난한 나무가 되었든 부자 나무가 되었든
해마다 봄을 준비하는 것은
나무로서는 당연히 해야할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사이기에
여기에서 배우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분재에서 배우는 것은
자연을 닮아가는 순리입니다.
인간의 무리한 욕심으로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하여
많은 거름을 주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더 예쁜 꽃을 얻으려 조급하게 서둘다보면
그 나무 역시 반드시 탈이 납니다.
물결 흐르는대로 바람이 부는대로
누가 시키거나 억지 부리지 않는다면
분재는 가장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최고의 순간을 안겨줍니다.
그것이 단풍이 되었든 꽃이 되었든
분재는 욕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순응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응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분재를 통하여 얻는 것은
뿌린만큼 거두는 농부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어도
분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많은 날들을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물을 주고 사랑을 쏟아야만
건강한 생명체를 이루어갑니다.
이 성실성이 바로 농부의 마음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예술인의 마음이라면
분재는 농부의 마음으로 예술을 실행해가는
가장 근원적인 작업이 될 것입니다.
님이 분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지
그것은 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분재라는 것을 통하여 깨달아가는 이런 주제들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일찌기 조선시대에 양화소록을 저작했던
강희안이라는 선비 역시
분재를 통해 인격 완성과 깨달음을 얻으려 했던 것처럼
제가 분재를 좋아하고 그 일을 즐기는 것도
그 노력의 연장임을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님 역시 좋은 분재와의 가연을 기대합니다.
예솔지기 드림
댓글목록
정상규님의 댓글
정상규 작성일좋은글 잘보고 갑니다.선생님의 분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충분히 느낄수 잇네요.
서덕석님의 댓글
서덕석 작성일3년전, 야매 소품 소재하나를 예솔에서 우편주문으로 구입했다가 익명의 회원으로 사이트 방문만 하고 돌아가기를 되풀이 하다가 약 6개월전, 집을 새로 꾸미기전에 가입했는데 회원 ID만 있고 비밀번호를 알길이 없어 다시 가입 절차를 밟은 경기도 광주인입니다. 서울남쪽이지만 강원도 못잖게 춥고 서늘한 골자기에서 나무와 벗하며 장애청소년들에게 직업재활 겸 원예치료 일환으로 분재와 야생화재배, 정원수배양 등을 가르쳐 보려고 직접 분재공부를 시작한 장로교목사입니다. 선생님의 분재관이 생태적이고 교육적이어서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곧 이곳 재활원에 자그마한 온실을 하나 지으려고 준비중인데 분재관리에 적당한 모델과 분재양생 과정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려고 하니 지도를 부탁 드립니다.